인물 소개

탁동경 / 28세 (박보영)

탁동경 / 28세 (박보영)

라이프스토리 웹소설 편집팀 주임

내 인생은 누구의 장난인지.

동경의 나이 열 살, 교통사고로 부모를 동시에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장례식장에 갓 일곱 살이 된 남동생 선경의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아이라고 해서 다 모르지는 않아서 동경은 울지 않고 버텼다. 나는 울지 않는 착한 아이니까. 그러니 우리를 데려가세요. 우리를 길러주세요. 눈앞에서 자신들을 서로에게 떠맡기려 싸우는 어른들을 보며 그렇게 빌었다. 그날부터였을까. 운명이 걸어오는 못된 장난에 동경의 인생이 속수무책 넘어지기 시작한 게.


장난까나. 하나도 재미없거든?

그렇게 이모의 손을 잡고 내려온 제주도. 바람과 바다의 콜라보로 빚어진 유년기와 청소년기 덕분에 동경은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누가 주지도 않은 눈치를 보는 버릇은 제주가 아니라 동경 스스로가 동경에게 준 것이었다.

웹소설 편집자는 세상의 눈치를 보다가 떠밀려 선택한 직업이었다. 원하는 직업이었나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원하는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의 눈치를 본다는 건 그런 거였다. 목표도 원대한 꿈도 없는 삶. 그저 이어지기에 급급한 삶. 그래도 괜찮아. 이 정도면 되었다. 이 정도면 살만하다 생각했었더랬다. 순진하게.

뇌종양 선고를 받은 날, 동경은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었다. 이딴 거 정말 하나도 재미없다고 목줄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토록 운명의 눈치를 보는데 운명은 어떻게 하나도 내 눈치를 보지 않는지. 정말로, 정말로 동경은… 울고 싶었다.


물음표 만든 새끼 누구야.

저기요. 저한테 왜 그러시나요? 저기요? 왜 전가요? 인생이 온통 물음표의 향연이었지만 언젠가 느낌표나 마침표가 제 인생의 끝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주 작은 희망쯤은 품고 살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물음표로 인생이 끝장나버리게 생겼다니……. 애초에 물음표가 왜 문장의 끝맺음을 담당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물음표 만든 놈 때문이잖아. 누가 그 놈한테 그런 생각을 심어줬지? 누가 그 놈을 태어나게 했지?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결국 분노의 끝은 다시 하늘로 향하게 되는 거였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소리 쳤다. 세상 다 망해버리라고. 이렇게 다 한 번에 끝장내버리자고. 그 말을 누가 진지하게 듣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HAPPY BAD DAY!

새벽 세시에 초인종 누르고 찾아온 이 미친놈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이 무색하게 그 미친놈은 자신을 ‘멸망’이라 소개했다. 그러고는 대뜸 동경의 소망을 이뤄주러 왔다고 했다.

아주 오랫동안 동경은 누군가 제게 대답해주길 바라왔다. 멸망과 함께하는 100일 동안 동경은 멸망이 제게 온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물음은 세기와 문명을 건너 네게 닿았구나. 너는 그 많은 것들을 건너 내게로 왔구나. 멸망에게 사람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동경이었다. 사람이란 단어는 사랑과 닮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동경은 처음으로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물었다. 동경아 넌 뭘 원하니. 네, 저는 이 사람이, 이 사랑이 존재하길 원해요.

오래 미뤄온 운명의 답이 들려온 순간이었다.
탁선경 / 25세 (다원)

탁선경 / 25세 (다원)

동경의 동생, 취준생

2021, 대한민국의 누나들을 빡치게 할
최악의 동생이 온다!


일곱 살에 부모를 잃었지만 대신에 엄마를 두 명이나 얻었다. 이모인 수자와 누나인 동경이 그 두 명의 엄마다. 나이가 두 자리인 것과 한자리인 것은 이리도 차이가 나는 걸까. 열 살에 이모 인생에 얹혀살게 된 누나 동경은 주지도 않는 눈칫밥을 혼자 다 먹었고, 일곱 살이던 자신은 눈칫밥이 다 뭐냐 싶게 하루 네 끼, 컨디션 좋을 땐 다섯 끼씩 꼬박 챙겨먹으며 컸다. 아마도 자신이 먹을 눈칫밥을 누나가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이야 한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 그렇지. 누가 그래 달라고 했나. 그걸로 생색낸다면 선경도 할 말이야 있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누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아무 꿈도 목표도 없는 누나와 달리 너무 많은 꿈과 너무 많은 목표가 있어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저지르고 안 되면 수습은 누나한테 부탁해볼까? 성공하면 어차피 누나한테 한 방에 갚아줄 거니까. 그렇게 철없이 꿈을 향해 이리저리 두리번대고 있는데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려온다.

뭐? 우리 누나가 아프다고? 그럴 리 없어!
어제 누나한테 맞았는데 주먹 개 쎘다고!
강수자 / 48세 (우희진)

강수자 / 48세 (우희진)

동경과 선경의 이모

인생 모토가 올인.

인생에 적당히 라는 것이 없다. 어릴 때부터 성질이 급했다. 한번 정하면 달려가기 바빴다. 달려가서는 마구 퍼부었다. 천성이 그랬다. 언니랑은 얼굴만 닮은 쌍둥이였지 성격은 정반대였다. 꼭 반을 쪼개서 그런 성질만 제게 퍼부은 것처럼 언니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을 땐 몸 반절이 꼭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자마자 보인 것은 어른들 틈에서 울지도 않고 손을 꼭 잡고 앉아있는 동경과 선경이었다. 언니가 내게서 떨어져 나가며 이런 부스러기들을 흘려놓고 갔구나. 서로 책임을 미루는 집안 어른들 틈에서 아무것도 재지 않고 소리쳤다. 제가 키울게요. 그때 나이가 서른이었다. 그때부터 쭉 수자는 연애도 결혼도 마다하고 3교대 카지노 딜러를 하며 동경과 선경을 키웠다. 그야말로 둘에게 인생을 올인한 거였다. 그런 수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케빈은 카지노에서 수자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했다고 했다. 결혼해서 함께 캐나다로 가자고 했다. 동경이 대학 졸업반이 되고, 선경이 스물이 되자 동경과 선경은 수자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갈 것을 선언했다. 미안했고, 고마웠고, 사랑했다. 그렇게 케빈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끽 중이었는데 한국에서 난데없는 소식이 날아 들어온다.

인생을 올인해 키워온 부스러기가,
내 동경이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