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강은실

강은실

여. 50대 / 3공단 거주 30년

가만있어 보자... ‘은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요. 다들 강선장이라고 불러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이래봬도 내가 생전에 조깃배 몰던 선장이거든.

[주원호]라고, 우리 아들 태어나던 해에 배를 사서 아들 이름을 붙였어요. 그때는 신랑이 배타고 나는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웠지. 내가 직접 바다에 나간 건 한~참 후에. 우리 주원이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는데 어느 날 아빠 따라가서 고기 잡아오겠다고 나갔다가 둘 다 안 돌아왔어요. 예보에도 없던 빌어먹을 풍랑이 쳐서 첫 날은 배만 돌아오고 다음날은 아들이 바닷물에 쓸려오고 그 다음날은 남편이 고깃배에 실려 돌아오고...

두 사람 장례 치르고 나서 따라 죽으려고 했는데 오기가 생깁디다. 옘병할 놈의 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곱게 빠져 죽진 말자. 그래서 배를 타기 시작했어요.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다, 그랬는데 죽지도 않고 5년을 탄 거야. 고기도 잘 잡히고 사업장도 커지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러대요. 풍랑도 염치가 있어서 나는 비껴간다고. 개뿔. 입방정이 씨가 됐는지 그 해 태풍에 유명을 달리했어요. 눈 떠보니 여기더라고요. 죽었는데 시체를 못 찾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나. 어차피 초상 치러줄 식구도 없는데 잘 됐지 뭐. 그때부터 여기 정붙이고 삽니다. 그게 벌써 30년이 다 됐네.

여긴 말예요, 애들이 너무 많이 와요. 적게는 서너 살부터 많게는 스무 살까지 대체 저 천사같은 것들이 뭘 잘못 했다고 이런 델 오냔 말이지. 속에선 울화통이 터지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따뜻한 밥이나 해먹이자, 해서 시작한 게 이 가게예요. 처음엔 탁자 두어 개 놓고 애들 불러다 밥을 먹였는데 점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져서 아예 식당 겸 전빵을 차렸어요. 맞다, 요샌 전빵이란 말 안 쓴댔지.

암튼 내가 원래 손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좀 요란스러워요. 뭘 했다 하면 대충이 없어. 일을 사서 한달까. 덕분에 이 동네에서 제일 바쁘게 삽니다. 학교 급식 도맡아 하지, 동네 노인들 도시락 만들지,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새로 오는 불쌍한 망자들 돌봐야지, 잠시 엉덩이 붙일 틈이 없다니까. 할 일은 많은데 몸뚱이가 하나라 영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참, 내가 그 얘기 했나? 얼마 전에 현지아빠 온 얘기. 이 동네에 십년 넘게 있다가 재작년에 사라진 여자애가 있는데, 그 애 아빠가 여길 왔지 뭐예요. 인물이 훤칠한 욱이 총각이랑 둘이 왔는데 너무 딱하더라고. 딸이 그렇게 억울하게 있다 갔는데, 그 아빠까지 이런 데 올 게 뭐야. 기왕 올 거면 현지 사라지기 전에 와서 부녀상봉이나 하게 해주던가. 근데 더 기가 막힌 게 뭐냐면, 이 양반들이 안 죽었다는 거예요 글쎄. 망자 생활 30년 만에 산 사람을 보다니, 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둘씩이나. 진짜 죽어서도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덕분에 요새 아주 든든하고 좋습니다. 아니, 산 사람이 둘씩이나 있는데 이 억울한 사람들 그냥 두겠어요? 밖에 나가서 뭘 해도 하겠지, 내가 딱 보니까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야.

30년 전 물고기 밥이 됐을 나는 제쳐 두고,
저 어린것들 싹 다 보내주면 원이 없겠네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