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개

노다현

노다현

28세 / 지화양식당 수습직원
아무에게도 못 보여줄 자소서를 쓴다면 다현은 아래와 같이 쓸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힘들어, 웃으면 복이 온다길래 복 받으려 웃었더니 그 미소가 날 향한 거라 착각한 미친놈이 스토킹 폭력을 휘둘러 본의 아니게 스토커를 죽이고 자수하러 갔는데 하필 불금.. 지구대가 만원이라 자수 실패 후, 집 앞에 버려진 냉장고에 시체를 숨겼는데 앞집 레스토랑 남자가 실수로 버렸던 거라며 냉장고를 회수해가고 저는 그 냉장고를 찾으려 기웃대다가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됐어요. 뭐 이따위 인생이 다 있나요? 남들도 보통 이런가요?”

아니,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자소서나 쓸 수 있을까. 항소서면 몰라도. "사람을 죽였지만 정당방위였어요!"라고 말한들 누가 믿어줄까. 회사에서 잘릴 때도 내 말 아무도 안 믿어줬는데.. 겉보기엔 멀쩡하고 젠틀하다 생각했던 직장 상사가 상상할 수도 없던 폭력을 행사. 그에 저항했다가 되레 무고죄로 몰려 오명을 뒤집어쓴 채 퇴사 당했다. 그 덕에 아르바이트 전전하다가 스토커가 꼬여 현재 이 모양 이 꼴.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자책하다가 깨닫는다. 내 잘못은 단 1도 없다는 걸. 나는 그저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걸!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걸!

그러나 그걸 깨달았다 한들, 상처가 사라지거나 몸에 새겨진 공포나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건 아니다.

나는 잘못이 없고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다. 어제도 하고 그제도 했던 그 결심을 오늘도 되새기던 어느 날, 시체 쟁탈전 덕에 만난 앞집 남자 은계훈은 어딘지 수상하고 어딘지 위험해 보이는 동시에 기막히게 내 기분을 아는 것만 같다. 내가 지금 우울한지 내가 지금 무서운지 내가 지금 행복한지 내가 지금 설레는지...

시종일관 철벽을 치면서도 내 기분을 헤아려주고, 갈 곳 없는 날 레스토랑에 기꺼이 취직시켜주고, 곤란할 때마다 나타나 해결해 주는 이 남자에게 저도 모르게 설렘을 느낀 순간, 다현은 스스로가 미친 줄 알았다.

언제 수갑을 찰지 모를 지금 설렘을 느끼다니.
하여 설렘이 싹 틀 때마다 싹둑싹둑 잘라내며 지내는데..
홍복희

홍복희

50세 / 다현母, 춘옥전골 사장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하지만 늘 맛이 부족하다. 맛에 둔감한 단골들 덕에 가늘고 길게 장사하는 중. 내 팔자만큼 더러운 게 없지. 딸 다현만은 나 같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여느 엄마 같은 실수를 하고 또 한다. 나처럼 살지 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 인생은 니 인생이고 니 인생은 내 인생이야...를 입에 달고 산다.

잘난 거 없는 인생의 유일한 자랑이 좋은 대학 나와 좋은 회사 다니는 딸 다현이었는데, 다현이 회사에서도 잘리고 쓰레기 같은 스토커를 만나 살인자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돌 거 같고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딸 팔자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정말인가? 날 닮아 이런 건가? 다현이 꼭 내 인생을 따라오는 거 같아 두렵다.

제발 그러지 마, 딸아. 부디 나처럼 되지 마, 내 딸아.
복희는 그렇게 빌고 또 빈다.
나춘옥

나춘옥

68세 / 다현의 외할머니, 복희의 엄마

조용하지만 센 할머니. 누군가 핏대 높여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치면 춘옥은 그저 조용하고 순하게 듣고만 있다가 실례 좀 할게요, 하며 예의 바르게 바로 빠따를 휘두른다. 아무 때나 그러는 건 아니다. 춘옥이 그렇게까지 나설 땐, 무조건 춘옥이 옳고 상대가 잘못한 거다.

사리분별 확실하고 은근 객관적인 할머니. 그래서 18년 전 어느 날, 아주아주 객관적이고 아주아주 큰 선택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자 가장 아픈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