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작전공개

[정석희칼럼] '조작'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요?

[정석희칼럼] ‘조작’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요?

 
 
 
사랑이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다는 사람이 있나 하면 사랑이 너무나 어려운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설렘, 간절함, 두근거림. 그리움 같은 애틋한 감정들을 용기가 없어 전달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언제나 사랑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글들이 넘쳐나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전차남’이나 MBC ‘일밤-뜨거운 형제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도 같은 맥락의 관심이지 싶고. 하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1956년에 발간되어 이젠 고전으로 자리 잡은 철학자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도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지만 ‘기술’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표한 이들도 꽤 많지 않았나. 의뢰인을 대신해 연애를 이루어주는 연애조작단 ‘시라노 에이전시‘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또한 ’조작‘이라는 단어가 거슬리기 때문이지 싶다. 나 역시 사랑에 있어 감히 조작이라니. 남이 짜준 각본에 의해 이뤄지는 자연스럽지 못한 사랑, 그런 사랑이 과연 오래 지속되기는 할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세뇌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연애에 서툰 이들로서는 간절히 바라해마지 않을 도움이지 않을까? 필시 연애의 달인이지 싶은 강경훈 감독을 만나봤다.
(참여: 강경훈 감독, 정석희 칼럼니스트)

 

 
: 영화와 비슷하려니 했는데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다르더군요.

강경훈 : 영화가 3~40대 남자의 시선, 즉 서병훈(엄태웅)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여자의 과거와 현재였다면 드라마는 기획 단계부터 ‘공민영‘이라는 20대 여자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니 캐릭터 설정이 바뀔 수밖에 없었고요. 영화는 러닝타임이 있으니까 모든 캐릭터에게 시간을 할애해주기는 힘들어서, 그래서 삼각관계에만 집중을 했을 거예요.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시간 제약이 덜하기에 여러 캐릭터들의 감정을 세세하게 다뤄줄 수 있는 것이고요.

: 제가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들은 들러리로 만드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 드라마는 ‘무진’과 ‘아랑’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강경훈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영화 쪽도 마찬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노력을 하던 결국은 주연배우들 위해서 모이는 격이 되고 말잖아요. 서브 캐릭터들이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모든 결들이 합쳐지면 이야기가 더 풍성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다행히 우리 드라마는 옴니버스 형식에, 각기 주인공들이 있고 또 거기에 우리 캐릭터들도 있으니까 다양한 얘기가 가능해진 거죠.
 

 
: 시즌제로 가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요?

강경훈 : 미국 드라마 ‘Sex and the City’가 작품 자체도 재미있지만, 사랑에 관한 담론을 형성 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었지 싶어요. 특정한 감정으로 몰아가는 것보다 인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관계와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그 정도로 긴 호흡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 주인공들도 그렇고 에피소드에 초대된 배우들까지, 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에요.

강경훈 : 그런 부분은 제작사 대표님의 힘이 크죠. 감독이 원한다고 다 모실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복 받은 연출이에요.

조언에 대한 경계선이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조작’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설득이 되더군요.

강경훈 : ‘조작’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요? 좋아하는 여자와 우연인 것처럼 마주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리는 일도 조작일 수 있죠.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내 좋아할만한 머리를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가는 것도 조작일 수 있고요. 조언에 대한 경계선이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 가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불분명해진 것이 있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우리 드라마가 ‘공민영‘의 시선인지라 이를테면 20대들이 좋아할만한 취향을 모아 놓았는데 거기에 40대인 저의 취향이 살짝 더해진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고등학교 이야기가 지금 10대의 첫사랑이기보다는 저 같은 40 대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느낌이 되어버렸더라고요. (웃음) 30대 중 후반들은 이해를 하겠지만 10대, 20대들은 답답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처럼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드는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 어쨌거나 ‘공민영’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얘긴데요. 아이돌 캐스팅은 모험이지 않았나요?
 

 
강경훈 : 저도 걱정이긴 했어요. 워낙 영화에서 박신혜 씨가 잘 하기도 했고요. 처음 티져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수영 씨 본인도 멘붕 상태였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수영 씨가 너무 준비를 많이 해서 문제였던 거예요. 한창 해외 공연으로 바쁠 땐데 대본을 보며 엄청 연구와 노력을 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현장 상황이나 상대 배우와의 연기 호흡을 통해 대본과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더구나 이종혁 씨는 워낙 자유롭게 연기하는 타입이다 보니 거기에서 대혼란이 온 거예요. 그래서 소녀시대가 미국 공연 가기 전에 이종혁 씨랑 셋이서 만났어요. 대본과 현장에서의 흐름, 상대방의 연기를 보고 느끼고 리액션을 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 이후에 훨씬 수월해진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모두들 칭찬하고 있어요.

: ‘공민영’이 중심이라서 새로운 캐릭터 ‘차승표(이천희)‘가 더해졌나 봐요?

강경훈 : 그렇죠. 입체적인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필요했고요. 미스터리한 부분도 ‘차승표’가 맡고 있고요. 또 한 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지만 물들듯이 자신도 모르게 차차 빠져드는 사랑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 ‘차승표’에요. 이천희 씨와 잘 어울리죠?

이론 전공입니다

: 사랑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세요?

강경훈 : 사실 저는 잘 몰라요. 이론 전공입니다. (웃음) 솔직히 공감되는 대사도 있고 의아한 부분도 있어요. 저는 문제가 주어지면 일단 풀어야 하는 쪽이거든요. 사건이 일어났으면 푸는 일에 치중해야 옳지 싶은데 작가님은 어떤 감정이 생기고 무엇을 얻어 가는가에 집중을 하세요. 저는 공대 출신이라서 끊고 맺는 걸 좋아해서요. 그런 감정들 자체가 저에게는 당혹스럽기도 해요.

: 어떤 캐릭터에게 가장 애정이 가세요?

강경훈 : 에피소드 주인공들 중에서는 ‘독고미진(구은애)’이요.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랑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그리고 ‘무진(홍종현)’도 좋아요. ‘무진’은 대본 초반에는 대사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그걸 누가 하겠다고 선뜻 나서주겠어요. 홍종현 씨를 만나서 ‘나중에 이러이러한 에피소드가 있긴 해도 초반에는 대사가 없다, 대사가 없다고 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이건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라고 솔직히 얘기했어요. 그 부분을 홍종현 씨가 이해해줬어요. 고맙죠.

http://tvcast.naver.com/v/61773
최달인(이광수)과 독고미진(구은애)

: ‘무진’은 대사가 없어도,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있던 걸요. 표현력이 상당히 좋은 배우에요.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한 거죠?

 

 
강경훈 : 홍종현 씨를 만나보니 순수함이 보였어요. 그래서 그런 면을 부각시키기로 한 거예요. ‘무진’과 홍종현 씨가 크게 다른 사람일 것 같진 않아요. 끊어, 끊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흐름에 대해서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겠더군요. 달변가는 아닌데, 이를테면 ‘점심 뭐 먹을래?’라고 물으면 즉시 답을 안 하다가 40분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이미 다른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자장면’이라고 말하는 식이에요. 말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신중하고 진지해요.

: 극을 이끄는 인물이 리더 ‘서병훈(이종혁)’인데요. 영화의 ‘서병훈’과 드라마의 ‘서병훈’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그리고 중간부터 본 분들은 왜 이름이 ‘병훈’이었다 ‘일록’이었다 하는지 의문이더라고요.

강경훈 : 처음 이종혁 씨를 봤을 때부터 제가 생각했던 ‘서병훈’과는 느낌이 달랐어요. 이종혁 씨가 ‘서병훈’이란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일 거예요. 작가님 또한 애초에 생각했던 ‘서병훈’과는 달라졌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건 늘 그래요. 공이 특정 연기자에게 넘어가는 순간 공은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변화가 재미있어요. 다만 아쉬운 건 캐릭터가 달라졌음에도 저작권 문제로 반드시 그 이름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였죠. 그렇다는 사실을 중간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친구 ‘도일’의 입을 빌어 “서병훈보다는 서일록이 더 폼 나잖아. 그리고 너 어릴 때부터 별명이 셜록이었잖아.” 하고는 ‘서일록’을 섞어 쓰기도 합니다.

: 이 드라마가 우리네 정서와 참 잘 맞는 것이 우리가 왜 그렇잖아요. 어느 자리에서든, 어느 모임이든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엮어 보려 애들을 쓰죠.
 

 
강경훈 : 저는 그런 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누굴 엮어보려는 생각은 잘 안 합니다. (웃음) 어느 순간 ‘나이가 됐으니 연애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안 하고요. 어쨌든 우리 드라마의 담론은 ’운명적인 사랑‘과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사랑‘인 거예요.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 봐주시는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사진. tvN, 스튜디오S 전원재, 정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