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어바웃나인

이미지

나인 인터뷰 - 송재정작가 [정석희칼럼]

 
 

[정석희 칼럼] ‘나인’, 시간여행은 축복? 저주?

 
 
‘순풍 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2~ 2003)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크크섬의 비밀’(2008~2008)
‘커피하우스’(2010)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송재정 작가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짚어보니 새삼스레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매일 울리고 웃겼던 일일 시트콤들, 그리고 최근의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한 판타지 드라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본 적이 있으리라. 나는 빠지다 못해 위에 열거된 드라마를 단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다 봐온 사람이다. 어림잡아도 수백 편에 달할 터, 이젠 익숙해져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풀려갈지 짐작이 될 만도 하건만, 그럼에도 번번이 뒤통수를 맞고 만다. 하지만 뒤통수를 호되게 맞아 속칭 ‘멘붕’이 와도 왜 이리 마냥 기분이 좋은지. 예측 불가능, 이번 작품 tvN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특히나 그렇다. 다음 회가 기다려지고, 궁금하고. 우린 얼마나 더 놀라게 될까? 
  
 
 
 
 
 : 한동안 타임 슬립이 대세였어요. 오랜 시간 준비하셨을 텐데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드셨지 싶어요. 편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송재정 : SBS ‘신의’ 같은 작품은 더 오래 전에 기획된 작품이죠. 그런 기분이라면 그쪽이 더 심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다들 마찬가지일 거예요. 

 : 사실 틀만 타임 슬립인 경우도 있었죠. 그와 달리 tvN ‘인현황후의 남자’는 타임 슬립을 배제하면 이야기가 진행이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어찌나 짜임새가 있는지 보는 내내 감탄했거든요.

송재정 : (웃음)어색해라. 사람들은 자료조사를 먼저 하고 이야기를 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해요.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너무 개연성이 없지 않을 정도로만 자료 조사를 하는 편이에요. 
 
 

‘웬 코미디 작가가 SF냐’는 말을 들었죠

 : ‘인현왕후의 남자’에 이어 ‘나인’도 타임 슬립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두신 소재인가요?

송재정 : 제가 워낙 한번 잡으면 끝까지 파는 타입이에요. ‘인현황후의 남자’를 하고 나니 이제야 뭔가 좀 알겠더라고요. 사실 로맨스를 할 때는 왜 코미디 안 하냐고들 하시고, 또 그 다음엔 ‘웬 코미디 작가가 SF냐’는 말을 들었죠. 그래서 ‘나인’이 늦게 나오게 된 거에요. ‘인현황후의 남자’는 달달한 로맨스로 포장을 해서 가니까 쉽게들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 ‘나인’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인현황후의 남자’를 먼저 하신 건가요?

송재정 : 어떻게 보면 ‘저도 할 수 있어요!’라고 증명하기 위해서였죠. 일종의 절충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아 믿어주는 분위기가 된 덕에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 하게 된 거예요.

 : 내 과거의 하나를 바꿈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삶도 다 바뀌고 틀어지는 것을 보면서 순간 섬뜩했어요. 

송재정 : 실제로는 모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늘 타임머신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무언가 바꾸는 것을 쉽게 생각하거든요. 바꿔 놓아도 그 이후에 큰일들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 타임머신이라는 게 사실 무서운 도구죠.
 

상투적인 생각을 먼저 하고 그 후에 다시 생각을 해요

 : 드라마라는 게 대충 다음 대사가 예상이 되잖아요. 헌데 작가님은 일부러 시청자의 짐작대로 안 하시는 것처럼 보여요. 이를테면 시간 여행에서는 본인이 과거의 본인을 만나면 안 되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데 본인이 본인을 깨우다니. 상상력이 남다르세요.

송재정 : (웃음)아니에요. 저도 보통 분들하고 똑같아요. 상투적인 생각을 먼저 하고 그 후에 다시 생각을 하죠. 다른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일부러 많이 타임 슬립물을 읽기도 하고 보기도 했는데, 제가 답답하더라고요. 흔히 미션 하나를 가지고 그것이 되냐 안 되냐를 두고 엔딩까지 가거든요. 제 성격이 급해서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고요. 최소한 대여섯 개의 목적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 텐데, 그대로 가면 저는 제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웃음) 그래서 시청자들이 예상할만한 것은 앞쪽에 다 보여주고 그래요.

 : 사람을 발굴하는 재미도 있으시죠? 작가님 작품으로 스타가 된 배우들이 많아요.

송재정 : 제 공은 아니죠. 발굴은 다 감독님께서 하세요.

 : 그렇지만 그 인물에 맞는 옷을 입혀서 살려내는 건 작가니까요. 솔직히 작가님 시트콤 덕에 자리 잡은 배우들이 얼마나 많나요?

송재정 : 이런 쑥스러운 자리였나요.(웃음) 기존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배우는 저도 별로 안 좋아해요. 시트콤은 아무래도 신인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장르 특성상 캐릭터가 생명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결과가 오는 것 같아요. 

 : 배우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시겠어요.

송재정 : 일단 캐스팅이 되면 배우를 스토커처럼 살펴요. 기사도 찾아보고, 예전 작품도 찾아보고. 내 캐릭터와 어떤 부분이 맞을지, 다른 부분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래요. 연기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 성격이 나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초반에는 가려져도 중반 이후에는 다 나오거든요.
 
 
 
 
 
 
 : ‘박선우’ 역의 이진욱 씨도 캐스팅이 먼저였나요? 전작 tvN '로맨스가 필요해'와 이 작품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송재정 : 그렇겠죠. 제가 ‘로맨스가 필요해’를 보고 쓴 작품은 아니니까요. 굉장히 집중력이 좋더군요. 8회 편집본을 미리 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 진중하고 열심히 하고, 가식이 없어 보여요. ‘박선우’라는 인물처럼 느껴져요.

송재정 : 예를 들어 과거가 바뀌는 바람에 애인이 조카가 된 상황인데 삼촌이 조카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미세한 부분을 기대 이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요. 워낙 생각이 많대요. 생각 많은 배우가 생각 많은 작품을 만난 거예요. 몇 년 사이에 깨달은 것이 많았는지 무언가 알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작품도 잘 파악해서 왔더라고요. 따로 리딩을 오래 할 필요가 없었죠.

 : 선우가 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부분, 참 인상 깊었어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믿을 사람이 있는가, 저렇게 메시지를 남길 사람이 있는 가에 대해서. 아쉽게도 저는 없어요.

송재정 : 저도 없어요. 판타지죠. 판타지.(웃음) ‘선우’가 복 있는 사람인 거예요. 
 
 
 
 
 
 
 
 : 어린 ‘선우’(박형식)도 잘 어울려요. 아역이 어색했으면 완전 민폐였을 텐데. 다행이에요.

송재정 : 처음에는 비슷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점점 비슷해지네요. 영향을 받는 것인지. 워낙 감독님이 잘 찾아줘요. 오디션을 꼼꼼히 하는 분이세요. 맑은 느낌이 비슷하죠. 눈빛이 맑아서요.

 : ‘선우’가 작가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인가요?

송재정 :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죠.(웃음)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요. ‘인현왕후의 남자’의 ‘김붕도’는 작정하고 좋아하는 스타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만든 캐릭터에요. ‘선우’의 경우는 그렇지는 않고, 그 나이 대의 능력 있는 남자가 가질 만한 보편적인 성격을 찾다 보니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 어려서 큰일을 많이 겪은 설정이다 보니 담대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대본이 많이 앞서 있다고 들었어요.

송재정 : 지금은 쫓기고 있어요. 16회까지 나왔는데, 빠른 건 아니에요. 감독님이 빨리 찍거든요. 감독님이 제 목을 조르고 있죠. 빨리 쓰라고.(웃음)

 : tvN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요. 한 주일 전에 완성본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면서요. 쪽대본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던데 다른 방송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송재정 : 지상파 드라마는 저희보다 분량이 훨씬 많죠. 그리고 감독하고 작가가 매번 달라지다 보면 쫓길 수 있어요.
 
 
 
 
 
 
 : 김병수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송재정 :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저희는 막말도 막 하는 사이에요. 저랑 감독님이랑 죽이 잘 맞는 것이, 어디서 봤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을 싫어해서요.(웃음) 세트도 현실적이게 잘 만들어 주시죠. 인물 분위기도 잘 찍어주시고요. 미술팀도 ‘인현황후의 남자’ 때 같이 했던 팀이고요.

놀라셔야죠. 제 목표가 그건데!

 : 좋은 드라마는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 자꾸 생각하게 되고 권하게 되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술적으로 궁금하게 잘 만드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더 놀라야 하나요?

송재정 : 놀라셔야죠. 제 목표가 그건데.(웃음) 너무 궁금해서 잠 못 들게 하는 게 제 목표거든요.

 : 솔직히 작업하셨던 시트콤들의 경우 어이없는 결말이 나와서 일부러 그렇게 한다, 빤하지 않게 하려다 보니 무리수다, 라는 말도 많았어요. 아시죠? 

송재정 : 시트콤은 기본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놓고 쓰지 않아요.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그때그때 반응 보면서 만들거든요. 엔딩도 미리 생각해 놓지 않고요. 코미디의 특성이기도 하고. 그런데 ‘하이킥’ 같은 경우, 드라마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쭉 연결해서 보신 분들은 분노를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충격 받으실 줄은 몰랐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가 만든 서사에 책임을 져야 되겠구나. 깊이 반성했습니다.

 : 저도 울분을 터뜨렸던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인현왕후의 남자’나 ‘나인’이나, 지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거든요.

송재정 : ‘하이킥’때 시청자들을 괴롭힌 반성의 산물입니다.(웃음) 그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나인’의 끝이 너무 한스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현황후의 남자’는 다행히 해피엔딩이라서 좋았거든요.

송재정 : (웃음) 알겠습니다.

 : 9개의 향, 날짜나 시간이 짜임새가 있어야 하잖아요. 인과가 어긋나면 안 되니까요. 연구를 많이 하셨겠어요.

송재정 : 놓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아마 찾아보면 있을지도.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장르다 보니.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웃음)

 : 제가 아슬아슬한 상황을 감당을 잘 못해요. 다행히 ‘나인’은 그때그때 다 풀고 가더군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어떤 취향이세요?

송재정 : 느끼한 사람이 싫고, 상투적인 사람이 싫어요. 배우도 그래요. 재미가 없잖아요.(웃음)
 

 
 
 
 
 
 : ‘박선우’의 친구 역할의 이승준 씨도 매력적인 배우더군요. 처음 보는 분인데.

송재정 : 잘하시죠. 그 분도 감독님께서 찾아내셨어요. 처음 봤을 때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역할에 동화된 것 같아요. 

 : 앞으로도 과거가 계속 바뀌나요? 얘기하면 스포일러인가요.

송재정 : 그렇죠. 엄청난 스포일러죠.(웃음) 9회까지가 전반부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9회 이후부터 나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거예요.

 : 과거가 바뀌는데도 향이며 LP판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뭔가요?

송재정 : 저희 세계의 설정인 거죠. 그 설정이 나중에 중요하게 나오겠죠? ‘선우’가 왜 얻게 되었고 왜 남아있는지를 모르잖아요. 거기에 가치관을 부여하는 이야기에요. 

 : 이렇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좋은 작품 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같은 세대를 살게 된 점, 영광이에요.

송재정 : 제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욕하시는 것 아니신가 모르겠어요.(웃음)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사진. tvN, 스튜디오S 박지현 김영주